실패에 대하여
2026년 3월 28일

실패에 대하여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로 어떤 여정을 끝냈을 때, 나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단어를 피하지 않기로 했다.
실패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건 생각보다 기술적인 행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배움이 있었다", "과정이 중요하다", "피봇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언어들은 한 가지를 가린다. 내가 원한 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을 가리지 않는 쪽을 택하고 싶다. 실패를 실패라고 명명해야 그 다음 문장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렇게 한다."
실패를 부정하면 이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배움이 있었다"로 끝나면, 다음 문장은 없다.
만화영화의 2막
내 인생을 한 편의 만화영화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실패의 순간에 벌어지는 가장 위험한 일은 멈춤이다.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정체 상태가 진짜 비용을 만든다. "지금 나는 2막에 있다"는 해석은 그 정체를 차단한다. 2막에는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이 해석 하나로 실패는 끝점에서 중간점으로 재배치된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만화영화에는 각본가가 있지 않느냐. 2막 뒤에 3막이 오는 건 누군가 그렇게 써놨기 때문 아니냐. 현실에는 각본가가 없다.
맞다. 없다.
신과의 약속
그런데 APR 김병훈 대표의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키노트에서의 말과 함께 생각해보면 다르게 볼 수 있다.
키노트에서 김병훈 대표는 밸런스 게임 하나를 던졌다. 신이 찾아와서 "10년간 매일 14시간을 일하면 1조를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가정하자. 그 약속을 받아들이겠느냐.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약속이 있고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는 것과, 약속이 없고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는 것은 같다.
이 문장이 내 안에서 꽤 오래 맴돌았다.
각본가가 있든 없든, 결과가 동일하다면 구분할 수 없다. 그는 실제로 가장 힘들 때 "나는 신과 이런 약속을 했다"고 믿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고. 그리고 그 믿음 위에서 11년간 단 한 분기도 역성장 없이 유니콘을 만들고 최단기 코스피 상장을 해냈다. 사후적 합리화가 아니다. 신념이 먼저 있었고, 행동이 따랐고, 결과가 증명한 케이스다.
내가 "만화영화의 2막"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신과의 약속"과 같은 구조인 듯하다. 각본가의 실재 여부는 검증할 수 없다. 검증할 필요도 없다. 그 믿음이 다음 행동을 만들어내고, 그 행동이 결과를 만들어내면, 각본가가 있었던 것과 없었던 것은 구분이 불가능해진다. 증명은 결과가 한다.
확신과 메타인지의 분리
그러나 그는 결과에 대한 맹신과 과정에 대한 메타인지를 동시에 요구했다.
"우리는 무조건 잘 될 거야"라는 확신. 동시에 "우리가 부족한 부분이 뭔지를 알아야 되고, 내 말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수용을 할 수 있어야 된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은 레이어가 다르다. 결과의 층위에서는 서사를 믿는다. 과정의 층위에서는 서사에 기대지 않고 진단한다. 서사가 진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가 진단을 지속할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이 분리를 못 하면, "이건 2막이니까 힘든 게 당연해"라는 해석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구조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흡수해버린다.
나는 이 분리를 아직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한다. 서사화가 진단보다 빠를 때도 있다. 그러나 분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노력 중이다.
극적인 실패
"극적으로 실패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실패의 크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시도의 크기를 선언한 것이다. 애매하게 실패하는 건, 애매하게 시도했다는 뜻이다. 극적인 실패는 극적인 시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극적"은 남이 보기에 극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나 자신이 돌아봤을 때 이건 전력을 다했구나, 라고 인정할 수 있는 상태다. 대충 해보다가 안 되면, 실패조차 희미하다. 진짜 몰입했는데 안 되면, 그 실패에는 무게가 있다. 무게가 있어야 다음 단계의 연료가 된다.
김병훈 대표 역시 처음 3년간 일곱 개의 서비스를 죽였다. "정말 신나게 망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 망함에는 밀도가 있었다. 그래서 깨달음을 추출할 수 있었고, 그 깨달음 위에 APR을 세웠다. 밀도 없는 실패에서는 아무것도 추출되지 않는다.
믿음이 먼저다
사업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에서는 증거가 먼저이고 믿음이 나중이다. 사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일이다. 증거가 먼저 올 수 없다. 증거는 행동의 결과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김병훈 대표도 이것을 인정했다.
"사업은 신념의 영역이다. 나와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그냥 믿어야 된다. 아무도 우리를 안 믿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먼저다.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결과를 만들고, 결과가 확신을 강화한다. 이 루프에서 각본가의 존재 여부는 정말로, 문자 그대로, 상관없다. 루프가 돌기만 하면 된다.
실패는 이 루프가 한 바퀴 돌다가 멈춘 지점이다. 멈춘 지점에서 방법을 바꿔서 다시 돌리면, 그것은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것이 된다. 멈춘 채로 두면, 그것은 그냥 멈춘 것이다.
나는 다시 돌리는 쪽을 택한다. 지금 나는 2막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각본가가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3막을 쓰는 건 결국 나이기 때문에, 각본가의 유무는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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