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는 발걸음조차
2026년 4월 3일
특유의 유연한 성격, 친화력, 학교 생활에 원활히 참여하는 것. 이 중 하나만 없었어도 나는 묻힌 인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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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년생, 25학번, 여자, 비메디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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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어의 무게가 꽤나 상당하다. 군대를 갔다 왔나요? 아니오. N수해서 메디컬에 갔나요? 아니오.
때론 궁금증에 가득한 눈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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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서-무엇을 하고 오다가 지금-이제서야-왜-이곳에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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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내내 내 꿈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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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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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어느정도는 맞다),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봉사정신 때문에?
어느정도는 맞지만, 사실 이유는 저게 아니었다.
지방 일반고에서 물리선생님을 귀찮도록 괴롭히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생체 나노로봇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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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하고 싶었다. 나의 연구실을 만들고 내가 뽑은 인재들과 함께 헤드로서 그 연구를 진행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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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학교의 이과 인원은 턱없이 적었다. 전교 3등이었으나 1.9였던 나의 내신으로는 학종도, 교과도 쓸 수 없었고 나는 정시파이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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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의 일들은 술과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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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결국 나는 원점에 도달했다.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드라마틱한 성과도 없었고, 이룬 것도 없었다. 그래서 길고 긴 시간동안 스스로 생각했다.
난 무엇을 했는가?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가? 대략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나’를 수집했다.
주변인들에게 물어봤다.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무엇을 잘 하나요? 무엇을 잘 못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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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도 물어봤다. 내가 예전에 꾸던 꿈들, 내가 잘 하는 것, 남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지만 내겐 당연한 것, 나의 취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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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연결고리이자, 수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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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을’, ‘정보를’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세계를 경험하고, 사람을 분류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그게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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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허락된 시간 내에서 난 꽤 많은 활동을 했다. 연이은 N수 생활 중에서도 사람을 만났고, 전에 다니던 대학에서도 여러 활동에 참여했었고, 교외에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과 불편함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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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수집하는 것은 꽤나 도움이 된다. 도움을 주면서 마음의 빚을 지게 할수도, 도움을 받으면서 친해질수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수도, 나도 모르는 나의 이면을 알게될수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몰랐던 세상의 불편함를 경험할수도- 그리고 이건 사업 아이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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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 왜 들어왔는가- 라는 질문을 누군가 나에게 던진다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왔다. 반짝이는 눈으로 더 넓은 세상을 직시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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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 세상에는 좁은 세계를 가진 이들이 많다. 학과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익숙한 공동체 내에서 떠도는 사람들, 학벌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주어진 듯한 길에 순응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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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의 눈과 세상을 직시하는 이들의 눈은 다르다. 눈은 빛나고, 자만하지 않지만 자신감에 차있다. 때때로 이런 눈들은 불확실함에 마주쳐 떨리기도 한다. 헤매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눈은 빛을 잃지 않는다. 아니까- 머뭇거리는 발걸음조차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들은 머뭇거리는 발걸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눈들을 모으고, 함께 헤매보기 위해 왔다.
물론, 나의 창업 아이템의 성공에도 관심이 많다. 사람들의 불편함을 경험하며 만들어낸 나의 아이템. 아직 시간은 많으므로 이건 추후 이야기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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